성산 김영주원장님 신문 기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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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자
요즘 나라가 5.18관계로 시끄럽다. 자유한국당의 몇 몇 의원들의 5.18에 대한 망언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신의 발언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나 중국이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던 우리 아닌가.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이미 대법원에서 판결났고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역사적 사실이다.필자는 누군가가 이를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에 이용하려는 근본적 발상에서 이루어 낸 플랜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아름다운 양심적 글이 눈에 띤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문자이다. “이용섭 시장님! 저희 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저지른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인해 5.18정신을 훼손하고 광주시민에게 깊은 충격과 상처를 드렸습니다. 자유한국당 소속 대구시장으로 시장님과 광주시민들께 충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구시민들 다수고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대구경북 시도민의 57.6%가 해당 국회의원들의 제명을 찬성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생략” 그러면서 “광주시민에 대한 저의 사과와 위로는 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달빛동맹의 파트너인 대구시장으로서 공적인 것이며, 자유한국당 소속 단체장으로서 제 양심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라 하였다. 그는 이어 “이럴 때일수록 대구와 광주 시민들 간의 연대와 상생협력을 더욱 단단하게 해 이와 같은 역사왜곡과 분열의 정치가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대구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문자의 글을 접하면서 고기 먹고 난 후 시원한 콜라 한 잔 마시는 쾌감의 맛이 온 몸을 전율 시키듯 그 느낌을 받았다. 5.18 망언은 나 스스로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져가게 할 수 있는 분노의 경계이다. 갑자기 나타난 죽은 쥐를 보고 놀라듯 해서는 안 된다. 잠잠하던 바다가 어떤 회오리에 거센 파도를 만들어 굉음을 자아낸 것에 본능적인 불안감이나 두려움 공포심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이것들을 가지는 순간 그들의 플랜 속에 빠져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생산되어 나의 오장육부를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수 著 <소태산평전>에 나타난 소태산대종사의 일화하나 소개하려한다. 처화(소태산대종사의 어렸을 때 이름))가 1911년 부친의 빚을 갚기 위해 낙월도(당시 타리섬)에 조기파시의 장사를 하고 추석을 앞 둔 음력 8월 11일 날 배를 타고 영광 법성포로 귀가 할 때의 일이다. 뱃길이 칠산 바다로 접어들면서 바람은 더욱 커지고 풍랑이 거세어졌다. 초가을의 거친 해풍에 집채만 한 파도가 너울진다. 노련한 어부 둘과 심부름꾼 총각 하나, 거기에 몸을 맡긴 열 명 남짓한 승객들은 배가 탁류 밖으로 나가면서 부딪힌 격랑에 흔들며 이미 멀미를 시작했다. 증세가 시작되자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앞으로 내리 박았으며, 뒤에 있던 사람과 짐들이 우르르 몰려 앞 사람들의 몸 위로 엎어졌다. 그와 함께 해풍속의 가득찬 바람소리와 격렬한 파도소리에 파묻혀 옆 사람의 말소리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배는 나무접시처럼 기우뚱거린다. 배가 표류하게 되었다. 노를 젓던 사람들도 이제는 죽었다고 서로 붙잡고 통곡을 한다. 이제 바다는 커다란 공포만 가득하다. 처화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였다. 울고 있던 사공 옆으로 걸어가더니 난데없이 따귀를 갈긴 것이다. “이놈아, 죽게 된 마당에 정신까지 잃을게 뭐란 말이냐?” “빨리 노를 움직여라. 너를 잡아먹는 건 바다가 아니라 네 마음이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향해 연거푸 외쳤다. “여보시오. 왜 겁을 주는 거요? 이미 굴복했잖소. 벌을 주려거든 당신님께 대든 내게 줘야지 여기 승객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의 호통소리와 함께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도 잔잔해지더니 순식간에 건너편 바다 위로 까치머리처럼 생긴 섬(까치섬) 하나 나타났다. 승객들은 공포의 바다에서 느닷없이 섬을 만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까치섬은 대여섯 가구의 주민이 사는 어촌이다. 주민들은 선창가에 나와 부서져가는 배 한 척을 발견했다. 이미 속수무책이라 발만 동동 구르던 참인데 신기하게 파도를 뚫고 쏜살같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서 허둥지둥 달려와 줄을 던졌다 한다. 처화 일행은 까치섬에서 1박을 하고 무사히 법성포로 귀가했다. 그 뒤 소태산대종사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한다. “사람이 아무리 죽을 경우를 당할지라도 정신을 수습하여, 옛날 지은 죄를 뉘우치고 앞날의 선업을 맹세한다면, 천력(天力)을 빌어서 살길이 열리기도 하나니 여러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라.” 우리는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작은 일보다는 근원적인 일을 생각해야한다는 말이다. 작은 일에 신경을 쓰다보면 주객이 전도되고 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정부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광주 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진압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후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지속적인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사건은 국내언론통제로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게 하는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고, 1997년에 '5.18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1997년부터 대한민국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렸다. 북한에서도 "광주인민봉기(光州人民蜂起)"로 부르며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몇 몇 정치인들이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욕망에 이용하려는 것에 대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자칫 선동정치에 빠진다면 대한민국은 더 혼란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혼돈의 세계로 갈 것이다. 국민이여! 정신을 차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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