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우리사는 이야기

우리사는 이야기

성산 김영주원장님 신문기고 활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삼정지기박미희
댓글 0건 조회 559회 작성일 18-10-15 01:46

본문

인과(因果)의 길
 
 

_copy11.jpg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삼정원장

 

김 영 주

 

 

건축 일을 하는 일꾼들이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서로 말한다. ‘배운 놈들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 데, 우리 같은 놈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모양 이꼴이제~’ ‘억지로는 안 되는 것이여~’ ‘복권 맞는 놈들 봐봐 다 운이 있어야 하고 귀신이 보살펴줘야 한당게~.’

 


 

세상 사람들이 운이라고 하는 것을 ‘우연한 음조(陰助)’라 한다. 음조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진리가 들어서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덕행을 쌓으면 직접적인 대가가 아니라도 자기도 모르게 진리세계에서 도와주는 이치가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인간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연한 가운데 음조와 음해가 없지 않지만, 알고 보면 다 각자의 심신을 작용한 결과로 과거에 지은 바를 현재에 받게 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조상이나 귀신이 맡아 놓고 주는 것인 줄로 알지마는 아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심신을 작용한 결과로 과거에 자기가 지은 바를 현재에 받게 되고, 현재에 지은 바를 또한 미래에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짓지 아니하고 받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필자는 어릴 적 살생과 악행을 재미로 살았다. 개구리, 메뚜기 등은 물론 냇가에 물고기들을 엄청 잡고 살았었다. 또한 동네에 엿장수가 오면 흰 고무신은 물론 아버지가 밭갈이에 쓰시려고 사놓았던 쟁기버선을 들고 엿과 바꿔먹는가 하면, 바꿔먹을 것이 없으면 아이들과 짜고 달리기를 제일 잘한 친구가 엿목판을 담은 지게 작대기를 걷어차게 하여 엿목판을 떨어지면 엿장수 아저씨가 그 작대기를 걷어찬 애를 쫓아간다. 그 때 우리는 몰래 숨어 있다가 엿목판 째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 엿을 나누어 먹었던 짓거리를 주로 하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철없다 해도 너무 악행을 많이 저질렀던 것 같다. 그래서 받는 과보가 한 둘이 아니다. 부모님에게 매일 빗자루로 얻어맞는 것을 불고하더라도 필자가 자꾸 다리를 다치고 부서져 병원신세가 잦은 것이나, 위장병, 역류성식도염 등의 과보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종교생활과 함께 사회복지를 하면서 공익에 발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지은 벌보다 그 과보를 가볍게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부처님 경전 중 ‘아함경’에 수록된 내용이다. 옛날에 사리불존자가 기사굴산에서 금강삼매에 들어있었다. 그 때에 두 귀신이 허공을 통과하였는데, 한 귀신의 이름은 ‘가라’이고 또 한 귀신의 이름은 ‘우바가라’였다. 사리불이 결가부좌하고 선정삼매에 들어있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가라귀신이 말하였다.

 


 

“나는 지금 내 주먹으로 사문의 머리를 때릴 수 있다.”

 


 

그 말을 듣고 우바가라 귀신이 가라귀신에게 말하였다.

 


 

“사문의 머리를 때린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거센 비바람이 일어나 천지가 진동하고 사천왕까지도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처소마저 불안해진다.”

 


 

가라귀신이 말을 듣지 않자 우바가라 귀신은 그곳을 떠났다. 가라귀신은 바로 사리불에게로 가서 머리를 후려쳤다. 그랬더니 천지가 크게 진동을 하고 사방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 가라귀신은 즉시 지옥에 떨어졌다. 그 때에 사리불은 삼매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하셨다.

 


 

“그대는 지금 아픈 곳이 없느냐?” 사리불은 답변하였다.

 


 

“저는 평소에 병이 없었는데 지금은 갑자기 두통 때문에 괴롭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라라는 귀신이 만일 수미산을 후려쳤다면 수미산이 두 쪽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요행이 그대는 금강삼매에 들어서 이 삼매신통력을 의지했기 때문에 머리를 맞았어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극도로 위험했을 것이다.”

 


 

큰 수행을 하는 사람이나 사회를 위하여 공익정신으로 사는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죄업을 가볍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제일 부러운 아이는 ‘전방집(학교 앞 구멍가게)’ 아이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탕을 늘 빨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용돈을 거의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돈을 벌었다. 개구리를 잡아서 팔고, 뱀을 잡아서 팔았다. 불갑 저수지를 막은 뚝은 일본사람들이 구리철사로 돌들을 엮어 쌓아놓은 뚝이다. 나는 구리철사를 돌로 찧어서 구리철사를 잘라 팔았다. 그 결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사먹을 수 있었다. 돈의 힘은 대단했다. 아이들이 늘 나를 따랐다. 사탕하나 얻어먹기 위해서이다. 골목대장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복숭아, 수박, 참외 서리도 엄청 했다. 작은 권리를 남용하여 죄를 많이 지었다.

 


 

하루는 데리고 다닌 아이가 울었다. 왜 우냐고 했더니 공책이 다 되었는데 새 공책을 사야 숙제를 하겠는데 부모님이 오늘은 돈이 없으니 다음에 사라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슴없이 공색을 사 주었다. 대장역할 제대로 했다. 그 후 그 얘는 필자의 말을 거역한 일이 없었다.

 


 

필자는 그 후 돈쓰는 재미를 경험했다.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에 써야 보람이 있고 마음이 흐뭇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또한 돈은 정당하게 벌어야 후환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과거 이리역(현 익산역)에 ‘공칠(公七)이’라는 노숙자가 있었나 보다. 소태산대종사는 제자들에게 ‘공칠이’의 예를 들어 말했다.

 


 

“공칠이를 보라! 이리(裡里)역에 내리면 몇 층 양옥이 즐비하되 그 집에는 감히 들어가 볼 생심도 못 하고, 그 찌그러진 자기 집에만 찾아들지 아니하는가. 이것이 곧 자기가 지어 놓은 대로 가는 실례이며 지어 놓은 그대로 받는 표본이니라.”

 


 

현재에 내가 받고 있는 행복은 과거의 산물이다. 또한 현재에 내가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은 미래의 내 복이 된다. ‘하늘은 짓지 않는 복을 주지 않는다.’ 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