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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김영주원장님 신문기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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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삼정지기박미희
댓글 0건 조회 529회 작성일 18-01-1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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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을 회상(回想)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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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삼정원장
성산 김 영 주(도영)

 
 
 

 

 
 

새해는 밝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맨날 그 모양이다. 과거 이조시대의 당파싸움과 집단이기주의로 재현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늘을 향해 깊은 숨 안 들이킬 수 없다. 모두 사기꾼 같이 느껴진다. 재벌들도 그렇고 먹을 만큼 먹고 살면서도 매년 임금투쟁을 하고 있는 노총도 그렇다.

 
 

새해 첫 날, ‘신과 함께 죄와 벌’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만에 본 영화다. 영화 줄거리를 보면 ‘저승 법에 모든 인간은 사후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쳐야만 한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亡者)만이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누구나 가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곳,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릴 수 있는 영화였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국민보다 당리당락만을 일삼는 한국의 정치인들을 생각했고, 변하는 세상의 이치도 모르고 갑질만 하는 재벌들과 사회적 강자들, 남을 위한답시고 자신들의 먹이에만 전념하는 변질된 노총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과연 이들이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7개의 관문을 통과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웃음이 나면서 염라대왕도 이제는 한가한 시절은 지나고 아주 골치 아프고 바쁜 시절이 왔다는 단순한 판단이 들었다.

 
 

정치인이나 재벌 그리고 근로자를 위한다는 노총의 사람들은 하나하나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말로는 무엇을 못할까? 실제 행동이 그러해야 한다.

 
 

임진왜란 때이다. 원균은 수하에 있던 서리(書吏·문서 담당 하급 관리)에게 곡식을 사 오라며 섬에서 육지로 보냈다. 그 틈을 타 부하의 처를 겁탈하려 했다. 여인이 저항하며 밖으로 뛰쳐나와 악을 썼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대목이다. 원균의 리더십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균은 조선 수군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탈영병도 많았다. 판옥선 한 척당 164명이던 군사 수가 90명으로 줄었다. 노를 젓는 격군도 반으로 줄었다. 결국 원균은 거제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했다. 거북선과 170여 척의 전함, 수년에 걸쳐 마련한 무기들이 모두 바다에 수장됐다. 부하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장수는 그렇게 무력했다.

 
 

원균의 모함에 빠졌던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됐다. 남은 전함은 고작 12척. 조정에서는 아예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했다. 여기서 이순신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저희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대부분 12척의 배를 인수하러 허겁지겁 달려갔을 것이다. 이순신은 달랐다. 그는 배를 접수하러 바다로 가지 않았다. 대신 육지로 갔다. 열흘 넘게 전라도 땅을 돌았다. 이순신 장군은 그때 숨어 있던 군사와 군량미를 모으고 민심을 돌렸다. 그런 뒤에야 바다로 가서 12척의 배를 챙겼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무엇으로 싸움을 했는지 한 방에 보여준다. 그건 단순히 전함이 아니었다. 그 배를 타는 사람, 그들이 먹고살 양식, 부하의 가족에 대한 안위까지 장군은 염두에 두었다. 거기가 끝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순신이 겨냥한 표적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이순신은 문서에 수결(手決·요즘의 사인)할 때 자신의 이름 대신 ‘一心(일심)’이라고 썼다. 그걸 간절히 원했다는 뜻이다. 무엇과 하나가 되는 마음일까. 부하와 하나 되고, 백성과 하나 되는 마음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이다. ‘이순신의 일심’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장군이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였다. 전라도에서 온 병사가 부모상을 당했다. 천리 길이라 고향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순신은 자신이 타는 말을 기꺼이 내주었다. 병사는 그 말을 타고 가 부모상을 치렀다고 한다.

 
 

이순신은 말을 내주고 마음을 얻은 것이다. 비단 전라도로 달려간 병사의 마음만 얻었을까? 이 소문을 전해들은 군영의 모든 병사 마음을 얻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게 이순신이 펼쳤던 ‘병법 중의 병법’이라고 본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과 마주했을 때 이순신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필히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외쳤다. 여기에 ‘일심’을 만드는 비법이 담겨 있다.

 
 

상대방과 하나의 마음이 되긴 어렵다. 내 마음 따로, 상대 마음 다르니까. 그럼 어떡해야 할까. 내 마음을 죽이면 된다. 그럼 상대와 하나가 된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133척의 왜선 앞에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일심’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의 마음을 죽이면 된다. 필사즉생(必死卽生). 그럼 거대한 하나의 마음만 남는다. 그게 ‘일심’이다. 12척의 배에 실었던 가장 파괴력 있는 무기이다.

 
 

대한민국은 진보·보수, 재벌·노동자, 경상도·전라도 등 상대적 문제 때문에 민심은 백만심(百萬心) 천만심(千萬心)으로 쪼개졌다. 인터넷 댓글을 보아도 그렇다. 물론 세상은 강약의 이치가 있고 음과 양의 이치가 있다. 그러나 두 이치를 합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보다 크고 땅보다 크다. 그래서 인권이 새로운 시대의 대세가 된다. 원불교나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합장을 한다. 합장은 흩여진 마음을 일심(一心)으로 모은다는 뜻이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충무공의 일심병법(一心兵法)이 온 나라에 퍼져 정치인, 재벌, 노동자들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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